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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대 에너지융합기술연구소의 '차세대 중고온 증기 전기분해' - 월간수소경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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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간수소경제 성재경 기자] 운전석 옆자리에 앉아 한동대학교에서 포항테크노파크로 달리는 길이다. 영일만대로의 갓길에 빗물이 고여 물웅덩이를 이루기 시작한다. 안전 문자를 보니 경북 포항에도 호우주의보가 내렸다. 

“제 스트라이크 존은 500°C입니다. 향후 5년을 목표로 600°C 이하에서 작동하는 중고온 증기 전기분해로 제 
연구 인생의 방점을 찍어볼 생각입니다.”
빗물을 쓸어내는 윈도브러시를 보며, 한동대 기계제어공학부 이재영 교수가 몇 분 전에 한 말을 되새긴다. 이 교수는 뒷자리에 앉아 있다. 그는 포스코 석좌교수이자 지난 4월 말에 개소한 한동대 에너지융합기술연구소(ECTI)의 초대 연구소장이다. 에너지융합기술연구소는 석·박사급 팀원 6명으로 구성된 조직으로, 고순도 수소 생산과 발전기술 분야의 연구개발을 전담하고 있다. 
원자로 전문가가 주목한 ‘증기 전기분해’
이재영 소장은 원자로 열유체 전문가로 통한다. 원자로와 수소? 언뜻 보면 관련이 없을 것 같지만, 원자로와 연계한 수소 생산 연구는 꽤 오래전부터 진행돼왔다.
물 전기분해, 즉 수전해의 대표 공정으로 알칼라인 수전해, 양성자교환막(PEM) 수전해를 떠올리는 사람이 많지만, 이 외에도 열과 전기를 활용한 고온 증기 전기분해(HTSE; High-Temperature Steam Electrolysis)를 들 수 있다. 증기 전기분해의 장점은 명확하다. 상온이 아닌 고온일수록 전기분해에 드는 전기의 양이 적고, 제철소나 원자력·화력 발전소, 열병합발전소, 소각로 등 폐열을 활용한 수요처가 많다. 
특히 4세대 원자로 중 하나인 초고온가스로의 경우, 여기서 나오는 950℃ 이상의 고열을 활용해 화학반응만으로 물을 직접 분해해 수소를 만드는 연구가 일본과 미국, 유럽 등 원전 강국을 중심으로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원자력연구원이 지난 2006년부터 관련 기술을 연구해왔지만, 예산 축소 등 정부 지원이 줄면서 계획에 차질을 빚었다. 또 작년에 발표된 수소경제 활성화 로드맵에도 원자력을 활용한 수소 생산 내용은 빠져 있다.

“원자력 쪽에서도 수소 생산을 두고 오래 연구해왔어요. 지난 2008년에 미국 아이다호국립연구소(INL)에서 SOEC의 평면 설계를 사용해서 통합 실험실 규모의 HTSE 장치를 45일간 선도적으로 운영한 적이 있죠. SOEC는 SOFC를 거꾸로 진행한다고 보시면 돼요. 원리는 동일하죠. 산소 이온(O2-)의 전도성을 이용한 기존의 SOEC(O-SOEC)는 750℃ 이상의 고온에서 작동을 하지만, 양성자(H+) 전도성 전해질(P-SOEC)을 활용하면 작동 온도를 500℃까지 낮출 수 있죠. 제가 주목한 포인트가 여기입니다.”  
차세대 중고온 증기 전기분해. 이렇게 이해하면 쉽다. 사실 이 아이디어가 새로운 건 아니다. 한동대 에너지융합기술연구소의 최승광 전략기획본부장이 ‘어드밴스트 사이언스’ 2018년 11월호에 실린, 600℃ 이하의 온도에서 작동하는 ‘자체 아키텍처 초다공성(SAUP; Self-Architectured Ultra Porous) 3D 전극’에 대한 논문의 번역본을 보여준다. 최 본부장이 말한다.
“양성자 전도성 전해질은 전도성이 높고 활성화 에너지가 낮아 작동 온도를 500~600℃로 낮출 수 있어요. 기존의 산소 이온 전도성 O-SOEC가 가지고 있는 기술적 장벽, 즉 높은 증기 온도에서 수소 전극에 널리 쓰는 니켈(Ni) 산화로 인한 문제라든가 불안전성, 박리 문제를 크게 완화할 수 있죠.”
금속 재료의 내구 온도는 950℃를 현실적인 한계로 본다. SOFC의 내구성 문제가 늘 거론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온도를 낮추려면 새로운 소재의 전해질이 필요하다. 과거와 달리 페브로스카이트를 활용한 전해질(세라믹) 연구가 활발하고, 연구소 단위에서 소재 개발에 나설 수 있어 기술의 진입 장벽은 크게 높지 않다고 판단한다. 한동대 에너지융합기술연구소는 ‘증기 전기분해’를 우리나라 현실에 맞는 최적의 수전해 생산방식으로 보고 협업 연구를 추진 중이다. 
“현재 호주 CSIRO(연방과학산업연구기구)와 협업을 위한 절차를 밟고 있어요. 호주가 SOEC, SOFC 연구를 아주 열심히 하고 있죠. 또 태양광으로 생산한 그린수소를 암모니아로 변환해서 운송하고, 이 암모니아를 분해해서 다시 수소를 생산하는 기술도 갖추고 있어요. 이 수소로 SOFC를 작동하는 것도 물론 가능하고요.”
최승광 본부장이 CSIRO가 진행 중인 R&D 과제 목록을 보여준다. SOFC 과제는 4개, SOEC 관련 과제는 수증기, 암모니아, 메탄의 3개 연구를 수행 중이다. CSIRO의 사르브 기디(Sarb Giddy) 연구그룹장 산하 프로젝트 팀 중에서 애니 쿨카르니(Ani Kulkarni) 박사 연구팀과 공동연구 프로젝트의 세부 내용을 조율 중이다.
“호주가 SOFC의 효율을 높이는 방향이라면, 우리는 온도를 낮추는 방향이죠. CSIRO의 담당자도 우리 제안에 관심이 큽니다. 효율과 온도에서 서로 원하는 방향성이 잘 맞는다고 해야겠죠. 코로나19가 복병이긴 해요. 지금 호주 멜버른에 락다운(도시 봉쇄) 조치가 내려져서 일정을 잡는 데 좀 어려움이 있죠.”
호주 CSIRO, 포항테크노파크와 연구개발 협의
차가 포항테크노파크 입구를 지나 언덕을 오른다. 굵은 장대비를 피해 포항테크노파크 5벤처동(미래융합센터)으로 든다. 작년 12월에 준공한 새 건물이다. 포항테크노파크는 포항공대와 포항산업과학연구원 등에 흩어져 있던 장비들을 모아 1층에 ‘수소연료전지 인증센터’를 마련했다. 
로비의 벽에는 수소연료전지의 장점과 이해를 돕는 시트지가 붙어 있고, 창가에는 STX중공업과 미코의 SOFC 연료전지가 본보기로 놓여 있다. 바로 이곳 포항TP를 중심으로 ‘수소연료전지 발전 클러스터’ 조성사업을 위한 예비타당성 조사가 한창 진행 중이다. 포항TP는 이를 위해 지난 6월 8일 경상북도와 포항시, 한국수력원자력, 포항공대, 두산퓨얼셀과 양해각서를 체결하기도 했다. 
최승광 본부장은 “호주 CSIRO와의 협업뿐 아니라 포항TP의 국가 수소연료전지 클러스터 사업에도 참여 의향서를 냈다”고 한다. “대학의 예산으로는 이런 별도의 공간이나 시험장비들을 갖추기가 사실상 불가능하죠. 우리가 계획한 연구들이 본궤도에 오르려면 포항TP의 협조가 꼭 필요해요. 자체 개발한 멤브레인을 테스트하거나 호주에서 온 SOFC 프로토타입을 테스트할 때도 여기 있는 장비들이 큰 도움이 되죠.”
이재영 소장은 서시원 박사과정 연구원과 함께 ‘SOFC 셀 테스트’ 장비를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아무래도 PEM보다는 SOFC에 관심이 많다. 소재 측면에서도 백금을 촉매로 하는 PEM보다는 실리콘을 쓰는 SOFC가 경쟁력이 있다고 본다.


포항이라는 지역의 특성상 포스코를 빼고 논하기는 어렵다. 제철이나 제강 과정에서 온실가스 배출을 낮추는 방향으로 에너지 전환 노력이 이뤄지고 있고, 그 중심에 수소가 있다는 점은 명확하다. 부생수소를 활용하거나, 천연가스에서 수소를 추출하는 ‘스팀 메탄 개질’ 방식으로는 한계가 있다. 알칼라인이나 PEM 수전해를 활용한 그린수소 생산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경제성 있는 산업 수준의 수소 생산에 맞추려면 아직 넘어야 한 산이 많다.
“제철소나 열병합 발전소 등에서 나는 폐열을 써서 수소를 생산하는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뭘까? 이런 생각을 하면서 1년간 수소 쪽 관련 연구를 죽 찾아봤어요. 아무래도 제가 원자력 전문이다 보니 이쪽 방면의 최신 연구 동향을 잘 알고 있죠. 세계적으로 미국을 중심으로 소형모듈형원자로(SMR; Small Modular Reactor) 개발이 활발해요. 여기서 나는 열을 이용해서 수소를 생산하는 공정에 대한 연구가 오래전부터 있어왔죠.”
소형모듈형원자로는 300MW 이하의 규모를 말한다. 작은 건 50~100MW도 있다. 원전 또한 크기가 작을수록 안전성이 크게 높아진다. 이재영 소장은 개인적으로 4세대 원자로에 속하는 용융염로원자로(MSR; Molten Salt Reactor)에 관심이 많다. 우라늄 대신 토륨을 써서 원료 조달이 쉽고, 100기압에서 작동하는 일반 원자로와 달리 대기압에서 작동해 폭발 위험도 거의 없다고 한다. 
“우연찮게도 MSR의 작동 온도가 딱 500℃예요. 또 정부 과제로 ‘소듐냉각 고성로’를 연구한 적이 있어요. 소듐을 액체로 해서 쓰는데 이것도 작동 온도가 딱 500℃죠. 뭘 해볼까? 이런저런 고민을 하다 중고온 SOEC 논문을 발견하고 이 분야를 깊이 들여다보기 시작했죠. 500°C, 여기가 제가 찾은 스트라이크 존입니다.”
500℃에서 작동하는 전해질 전극 개발이 관건
한동대 에너지융합기술연구소는 SOEC 연구에 이제 막 첫발을 내디뎠다. 첫 출발에는 응원의 목소리가 필요하다. 방향은 잘 잡았다. 최근 발표된 ‘유럽 수소전략’의 핵심은 수전해다. 탄소 배출을 최소화하는 그린수소 생산 R&D 플랫폼이 주목을 받고 있다. 두산퓨얼셀이나 한화솔루션 같은 대기업도 수전해 시장을 유심히 들여다보고 있다. 
폐열을 얻을 곳은 넘쳐나고, 500°C로 열유체를 제어하는 기술은 갖추고 있다. SOEC를 위한 양성자 전도성 전해질에 대한 연구가 활발하지만, 아직 낮은 온도에서 우수한 전지 성능을 내는 증기 전극의 설계가 제대로 실증된 사례는 없다. 바로 이 분야에 과감한 도전장을 내고 뛰어들 준비를 마쳤다. 

“스트라이크 존도 정했고, 그 방법론도 알고 있으니 이젠 제대로 공을 던지는 일만 남았죠. 뭐든 해보는 게 중요합니다. 페브로스카이트는 두 종류의 금속에 산소를 붙인 거예요. 이게 연금술이죠. 어떤 조합으로 가느냐에 따라 가능성이 무궁무진해요. 성공한 사례들을 참조하면서 타깃을 좁혀가다 보면 의미 있는 결과를 낼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엔 행운도 따라야겠죠.”
이재영 소장은 열려 있다. 국내 SOFC, SOEC 전문가들과의 협업에도 관심이 있다. 때로는 부전공 편입생이 전공자보다 뛰어난 연구 성과를 내기도 한다. 원자력, 열유체 분야에서 쌓은 이력과 기술력이 수소 분야에 새로운 활력을 불어넣을 수 있다. 
사실 한동대는 포항지진으로 가장 큰 피해를 본 곳이기도 하다. 당시 학교 외벽이 와르르 떨어지며 먼지를 일으키는 동영상이 뉴스를 타기도 했다. 포항역에서 택시를 타고 한동대로 가는 길에 지진을 촉발시킨 원인으로 지목받는 지열발전소 건설 현장을 지났다. 택시기사는 그곳을 가리키며 “머리털 나고 처음 겪은” 아찔한 순간을 떠올렸다.  
물론 한동대에선 지진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차세대 중고온 증기 전기분해’ 이야기만 했다. “7년 앞으로 다가온 정년퇴임을 앞두고 포항이라는 지역과 학생들을 위해 도움이 되는 뭔가를 해보고 싶다”는 이재영 교수의 말에는 어떤 울림이 있다. 
공학자의 눈이 사금처럼 빛나는 순간이 있다면, 어떤 노력이 운에 기대고 있을지 모른다는 겸손한 고백을 무심히 털어놓는 순간이 아닐까? 호우경보를 뚫고 달리는 상행선 KTX 기차 안에서 깜박 졸다 눈을 떴을 때 문득 든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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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ugust 31, 2020 at 08:08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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